4. 세계의 친우회

친우들은 봉사활동 계획에 따라 세계의 모든 대륙에 나가 있지만, 퀘이커주의를 널리 펼치는 데에는 크게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서독과 동독, 네덜란드, 스위스 등에 지금도 있는 연회(Yearly Meeting)와 오스트리아, 벨기에, 핀란드, 폴란드, 스페인 등에 작은 모임이 있는 유럽대륙을 제외하고는) 이들 몇몇 나라들은 빈약하기는 하지만 죠지 폭스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퀘이커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나라에서 퀘이커주의에 대한 관심은 지1차 대전 후 친우들에 의해 수행된 광범위한 구호 사업과 유럽의 수도에 있는 퀘이커 국제 본부의 조직망의 설치에 의해 되살아나고 커졌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하여 친우회는 전쟁의 죄악에 대한 기존 기독교회의 눈에 띄는 무관심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발전한 연회(Yearly Meeting)는 퀘이커주의의 두 가지 측면 즉, 궁핍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와 평화주의자선언을 특별히 강조하였습니다. 비교적 소수의 회원인데도 불구하고 친우들은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리고 알제리아에서의 교전 동안과 그 교전이 끝난 후에 광범위한 구호 및 재활 프로그램을 수행했습니다. 퀘이커 평화선언에 대한 확고한 집념은 군국주의가 영어 사용권 국가들보다 훨씬 더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국가들의 군국주의적 전통에 대항해서 지켜지고 있습니다.
퀘이커주의의 확산이 퀘이커 봉사활동의 으뜸가는 목적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의 친우들이 19세기 복음주의적인 운동의 영향을 받아 열성적으로 벌였던 전도활동의 목표는 바로 퀘이커주의의 확산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에서 몇 개의 작은 연회가 생겨났는데 그 연회는 대부분 관계된 병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연회는 필라델피아 친우들의 전도의 소산입니다. 근동지역에는 지금도 단 하나의 연회가 레바논에 있는 영국 친우들과 팔레스타인에 있는 미국 친우들의 일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에는 두 개의 분리된 연회가 영국과 미국의 전도사업의 결과로 생겨났습니다. 조직된 퀘이커 단체가 본토의 혁명에서 살아 남지는 못했지만 중국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오하이오 연회의 친우들은 활동본부를 냉킹(Nanking)에서 아시아의 다른 어느 곳보다 더 커다란 연회를 만들었으며 지금도 필리핀에서 선교사업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퀘이커가 융성한 대만으로 옮겼습니다.
캐나다와 미국을 제외한 신대륙에서는 미국 친우들의 선교활동으로 자메이카, 쿠바, 중앙아메리카. 알래스카, 볼리비아 등에 연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쿠바의 연회는 (쿠바)혁명에서 살아 남기는 했지만 교세와 활동이 점점 미약해져 가고 있으며 과테말라에 있는 본부로부터 혼두라스(Honduras), 엘살바도르 벨리제까지 활동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런 발전은 캘리포니아 연회의 친우들에 의하여 촉진되고 있는데, 그들은 지금은 독립된 연회를 갖고 있는 알래스카의 에스키모인들에게까지 퀘이커주의를 전파시킬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볼리비아와 그 이웃나라인 페루 -현재 1-2만 명의 아이마라 인디안(Aymara Indians)이 독립된 연회의 친우들이 헌신적으로 배려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의 경우 영국 친우들은 런던연회의 또 다른 활동의 결과로 생겨 난 6천명의 회원을 가진 마다가스카르 섬의 강력한 모임과 비교할 때 비록 작기는 하지만 독립된 연회로서 계속 활동하는 선교 본부를 펩바에 설립했습니다. 말라가시의 친우들은 마다가스카르 섬에 처음이자 지금까지도 단 하나인 비퀘이커들과 결합한 퀘이커 "자"교회(a Quaker "daughter" church)의 한 유형인 예수그리스도 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를 설립하기 위하여 2개의 다른 교회와 연합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 나라의 어려운 문제들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부룬디에 있는 2천명의 친우들은 그들의 "모"교회("mother" church)인 캔사스 연회에 아직까지도 소속해 있습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선교활동 중에서 가장 눈부신 업적은 인디애나주의 리치몬드에서 온 미국 친우들에 의하여 설립된 케냐의 서부지방에 본부를 둔 동아프리카 연회의 창립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연회는 교육에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으며 그 지도적인 회원들에 의하여 케냐의 정치적, 문화적 생활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친우들은 남아프리카에 퀘이커주의를 전파했습니다, 그곳에는 짐바브웨와 말라위를 포함한 광대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소수의 회원들로 구성된 활동적인 연회가 지금 있습니다. 영국 친우들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로 간 초기의 이주자들 가운데에도 섞여 있습니다. 그곳에는 현재도 활발한 연회가 오랜 기간 런던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에이레의 친우들은 한 번도 영국의 연회에 속해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분할된 섬의 전 지역을 관할하는 단 한 개의 연회로 연합돼 있습니다. 친우들은 코스타리카의 고지대에 있는 몬테베르디에 그들의 "식민지"(colony)를 갖고 있는데 알라바마주의 페어호프 모임(Fairhope Meeting)의 일부 친우들은 1951년 그곳에 퀘이커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그 회원들은 자기들이 살던 알라바마주에서 확산되어 가는 군국주의로부터의 피신처를 군대 없는 유일한 나라(코스카타리카)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현재 전세계 퀘이커 회원의 5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북아메리카에서는 영국과 같은 시기에 퀘이커주의가 성장했습니다. 퀘이커들은 매사추세츠의 청교도들로부터 매우 혹독한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초기의 과정은 그렇게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진해서 순교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자세는 존경받았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런던 연회의 창립보다도 몇 해 앞선 1661년에 뉴잉글랜드연회를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20년 후 보다 더 커진 그들의 활동력은 아메리카 퀘이커주의의 성장을 가져왔고, 그 무렵 윌리암 펜은 친우들이 퀘이커 신앙에 따라 예배를 드릴뿐만 아니라 평화주의자 원리대로 정부의 사무를 집행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펜실베니아의 퀘이커 식민지(the Quaker colony of Pennsylvania)를 건설했습니다. 윌리암 펜의 "거룩한 실험(Holy Experiment)"은 퀘이커가 다스리고 있었던 동안에는 펜실베니아주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무기를 가진 싸움이 없도록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항상 퀘이커주의의 매우 중요한 중심지이지만 그곳이 미국 퀘이커 활동에 있어서 (런던이 영국 친우회의 중심인 것과 같은) 그러한 중심지는 아닙니다. 통신 시설이 빈약한 데다가 거리도 너무 멀었기 때문에 전 미주 지역에서 단 한 개의 연회를 구성하는 일은 불가능했으며 독립할 때까지 6개의 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북아메리카에는 30개 이상의 연회가 (캐나다에 하나,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미국에) 있습니다. 많은 친우들은 노예제도가 없는 지역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싶어했기 때문에 대륙을 횡단하면서 서부로 서부로 이주한 결과 그렇게 많은 연회들이 생겼던 것입니다.
지리적인 분리는 분립적인 발전을 가져옵니다. 아메리카의 퀘이커주의는(19세기의 다른 교파에서도 그러했듯이) 분립적인 기관을 세운 몇 개의 교파로 갈라져 왔습니다. 영국 친우들은 복음주의를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교파 분열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중서부 지방의 친우들은 이 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아 19세기 후반에 일어났던 부흥 운동(the revival movement)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부흥론자들(revivalist)의 종교 방식을 일부 받아들였습니다. 모임은 회원들 곧 최근에 개종한 많은 사람들의 영적인 건강을 돌볼 목사를 고용하고 미리 준비된 설교와 성경 봉독과 찬송가 부르기를 그들의 예배에 포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즉, 퀘이커 모임집이 친우들의 교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목사의 인도 아래 짜여진 순서대로 진행하는 소위 "프로그램" 모임과 퀘이커 예배의 전통적 방식을 따르는 소위 "비(非)프로그램" 모임이라는 구별이 생겼습니다.
북아메리카에서 "프로그램" 모임의 친우들은 "비프로그램" 모임의 친우들보다 회원수가 많고 또한 해외 선교 사업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전 세계의 친우회에서 그들의 퀘이커 예배 방식이 우세한 것으로 보여질 것입니다, 북아메리카의 비프로그램 모임 친우들은 필라델피아에 본부를 둔 친우전체협의회(The Friends General Conference)로 뭉쳐져 있습니다. 가장 큰 프로그램 모임인 친우연합회(Friends United Meeting)는 인디애나주의 리치몬드에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또 다른 프로그램 모임인 복음주의친우연맹(the Evangelical Friends Alliance)은 부흥운동의 선교적이고 복음적인 정신을 보다 더 고집합니다. 덧붙여 이 세 그룹의 어디와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지만 주로 비프로그램 모임의 성격을 띠고 있는 연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보수적인 친우들(the Conservative Friends)인데 그들은 부흥론자들의 개혁에 의해 도전받았던 전통적인 퀘이커의 태도와 실천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퀘이커주의의 이러한 다른 방식들은 서로 섞여 있어서 같은 도시나 같은 주 혹은 같은 국가에서 나란히 발견되기도 합니다. 한 예로 멕시코에는 세 종류의 그룹이 따로 따로 자기들의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미국 친우회들의 그룹들은 서로가 고립된 채, "반대편"의 잘못을 단지 쳐다보기만 함으로써 자기들의 신념을 굳혀 나가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 당시 기독교회에 널리 펴졌었던 풍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교회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뜨리고 있는 초교파 정신이 친우들에게도 미치고 있는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재연합입니다. 친우연합회에 가입하고 있는 프로그램 모임의 친우들과 친우전체협의회에 속하고 있는 비프로그램 모임의 친우들이 연합한 몇 개의 연회가 지금 있습니다. 그 친우들은 각각 서로 다른 예배 방식의 타당성을 받아들였으며, "미국친우봉사위원회"나 워싱턴 시에 있어 퀘이커 로비활동으로 잘 알려진 "국가법률 제정에 관한 친우위원회(the Friends Committee on National Legislation)"등의 사업에서 공통적 근거를 찾아냈던 것입니다.
재연합은 대화와 이해를 증진시키고자 애쓰는 초교파 운동의 유일하거나 심지어 으뜸가는 목표는 아닙니다. 친우들은 이 세계에 있는 대부분의 연회들이 속해 있는 친우세계위원회(the Friends World Committee for Consultation)를 통하여 이것을 추구합니다. 이 위원회는 1937년에 창립되었고 지금은 매년 지역별 회합을 개최하는 세 개의 섹션(Section / 전미주 지역, 유럽 및 근동지역, 아프리카 지역)을 갖고 있습니다(지금은 아시아-서태평양 섹션이 추가되어 있음(편집자)). 세계 대표자 회의는 3년마다 열립니다. 이 모임들은 세계의 친우회를 구조적으로 결합시킨다던가 각각의 활동을 통일시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권면(Advices)의 말씀에 있듯이 "영원한 일들 속에서 서로를 알도록 힘쓸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서로를 풍부하게 해주는 계기를 제공하려 합니다. 서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마주 봄으로 해서 친우들은 "상대편"도 결국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고 친우회의 증거(witness)에 대해 부정할 수 없는 공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멀리서 볼 때 감당하지 못 할 것 같은 차이점이 가까이에 있음으로 해서 쉽게 극복되는 것이 증명된 셈입니다. 이런 차이점은 비프로그램 모임의 친우들은 봉사 활동을 강조하고, 프로그램 특히 복음주의적 모임의 친우들은 선교에 중점을 둔다는 데서 생겼습니다. 즉, 한 편은 현실적인 필요에, 다른 한 편은 영적인 필요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었습니다. 친우들은 세계친우회 안에서 함께 토론을 해 나가는 중에 지금까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에 바탕을 두었다고 보았던 증거(witness)의 두 가지 방식이, 실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서로가 서로를 살려내는 정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세계선교위원회에서는 모든 친우들이 평화 수립을 위하여 선교와 봉사의 정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함께 검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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