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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신문] ‘내가 본 함석헌’ 집필할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교수신문] 에 연재 중인 김용준 교수의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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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 계단의 저편에서 만난 참스승 그릴 것”

교수신문에서는 함석헌 선생에 대한 회고와 평가를 김용준 교수의 목소리로 들어보고자 기획연재를 마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김용준 교수 약력: 1927년 충남 천안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화공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유기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5년부터 고려대 화공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한국기독학생운동 총연맹의 요직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75년 박정희 정권 시절 첫 번째 해직을 경험했으며, 제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134명의 지식인 선언’으로 두 번째 해직을 경험했다. 1984년 복직됐다가 1993년 정년퇴임했다. ‘과학사상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계간지 ‘과학사상’을 창간해 과학대중화운동에 앞장섰으며, 학술지 ‘과학과 철학’을 발간하기도 했다. ‘부분과 전체’(하이젠베르크 지음), ‘나는 누구인가’(브로노프스키 지음) 등의 번역서와 ‘현대과학 어디까지 왔나’, ‘과학, 인간, 자유’,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과 사람’, ‘갈릴레오의 고민’ 등의 저술이 있다.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 서원대 이사장으로 있다.

노명식 전 성균관대 교수(서양사)는 함석헌 선생을 두고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내리막으로 치닫는 역사, 그 원인을 함석헌 선생은 철학적·시적·종교적 심각성이 빈약한 민족성의 결함에서 찾고 있습니다. 깊은 진리의 종교가 아니라 낙천적인 의식(儀式)의 종교만 있고, 자아에 대한 깊은 응시가 없어 자존심이 없으며, 그 까닭에 자유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국인은 이중의 고난의 짐을 지게 됐는데, 하나는 남의 압박이고 또 하나는 제 노릇을 못하는 자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한국의 역사에서는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일, 자기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이 일이 백 가지 병, 백 가지 폐해의 근본원인이 되고 나를 잊었기 때문에 이상이 없고 자유가 없다고 진단합니다.”

철학자 김상봉씨 역시 이런 함석헌 선생을 가리켜, “우리 민족이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있었던 시대에 우리에게 비친 한줄기 새로운 빛의 씨앗”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다시 노명식 교수의 말로 돌아가 보자. “그는 참 교육자의 참모습을 몸소 실천한 교육자였고, 교직에서 쫓겨난 후에는 여러 해 모범적인 농부이기도 했고, 어느 성서학자 못지않은 성서연구가였고, 매우 독창적인 역사가이며, 현대 한국을 대표할 만한 사상가였습니다.”

지난해 탄생 1백주년을 맞아 새롭게 조명된 함석헌 선생의 1949년 이후 생애와 사상적 성숙의 궤적이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에 의해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7일 지령 231호부터 2년 동안 연재될 ‘내가 본 함석헌’은 우리 시대 사상의 깊은 지평을 조명하는 기획으로 마련됐다. ‘내가 본 함석헌’은 한달에 2회씩, 격주 형태로 2백자 원고지 20매 분량으로 게재할 예정이며, 1949년 이후의 삶에서 1989년 타계하기까지의 생애를 대상으로 씌어진다.


“선생은 벗이요, 동지요, 아버지”

연재 집필을 맡은 김용준 교수는 “매일 아침 벽에 걸린 함석헌 선생님의 사진을 보며 일과를 시작합니다. 선생께서 평소 좋아하시던 한시도 외워보고. 함 선생님은 제 생활의 일부입니다”라고 집필 의욕을 밝히면서, “제 전공인 유기화학을 제외하고 사실 모든 것을 그분에게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평생의 작업으로 여긴 것은 바로 함석헌 선생님의 생애를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체력과 기억, 시간이 허락되는 한 과장 없이,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선생님의 삶을 돌아보고 싶습니다.”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김용준 교수가 함석헌 선생의 ‘평전 아닌 평전’ 집필을 떠맡은 데는 사연이 있다. 먼저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 하나. 김용준 교수와 함석헌 선생의 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대로 과거 교육부 장관을 지냈던 김숙희 이화여대 교수(영양학)가 그의 여동생. 어느 행사 자리였던가. 김 교수가 느닷없이 “사실 뭐 오빠는 아버지가 둘이지 뭐, 그치?”라고 말했다는 것. 김용준 교수에게 함석헌 선생은 사상의 벗이자, 스승이며, 육친애를 뛰어넘는 정신적 아버지의 역할을 해왔다는 진술이다.

김 교수는 “선생님의 전기를 내 나름대로 엮어보겠다는 생각은 늘 가져왔습니다. 사실 선생님과 아주 가깝게 지낸 사람은 작고한 송석준 교수(미국 미시간 주립대학)입니다. ‘아저씨, 아저씨’ 하면서 컸거든요. 이분이 미국서 저에게 그동안의 육필 메모를 보내왔습디다. ‘우리 둘이 선생님의 전기를 완성해보자. 전반부는 내가 할 테니, 후반부는 네가 해라’ 라고 늘 말했거든요. 이제 그 약속을 지킬 때가 됐나 봅니다.” 그렇다면, 김용준 교수는 함석헌 선생의 1949년 이후 생애의 완벽한 증인이자, 가장 가깝게 지낸 사상의 동지였으며, 또한 정신적 아들인 셈이다.

유기화학을 전공한 청년 과학도 김용준이 함석헌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1949년 봄, 종로 YMCA에서였다. 고향인 천안에 내려가지 않았던 어느 일요일 오후 종로 YMCA 건물 앞에 ‘성서강해 함석헌’이라고 써 붙인 광고에 끌려 삐거덕거리는 목조건물 2층 강당 뒷좌석에 앉게 된 것이 첫 대면이었다. 이 대면은 청년 김용준에게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바깥의 환한 빛을 등뒤로 받으면서, 삐거더럭거리는 낡은 목조건물의 2층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이상하게 그렇게 행동한 거지요. 어둡고 긴 계단이었습니다. 거기서 49세의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지요.”

김용준 교수는 이 집필과 관련, 벌써부터 설레는 듯했다. 다나카 요시코와 같은 일본 학자를 비롯, 함석헌 선생을 기억하는 외국 학자며, 생존해 있는 지인들을 찾아 기억을 더듬겠다는 것이다. 1927년 생인 김용준 교수는 금방 나이를 잊은 것처럼 보였다. “지금 함석헌 선생에 관한 글을 남긴다는 게 뭘 의미할까요.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이나, 뜻있는 분들이 선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그분의 큰 뜻이 알려져, 진정한 자기를 찾는 노력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용준 교수의 집필 동기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만큼 순수한 의미에 서 있다.


“생애를 가감 없이 재조명해볼 터”

그렇지만 김 교수는 어려움이 한두 가지 아닐 것이라고 걱정을 앞세운다. “글이란 게 쓰다가보면 낑낑대고 이것저것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다보니 처음과 달리 엉뚱한 글이 되더군요. 그런 요인도 있고, 또 함선생님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분과 함께 고락을 겪었던 많은 분들, 예컨대 돌아가신 계훈제 선생이나, 문익환 목사 같은 분들 이야기가 나올 텐데, 이분들에 대한 평가도 해볼 생각입니다. 물론, ‘김용준이 본’이라는 단서가 붙겠죠. 역시 가감 없이 비판할 것은 비판할 계획입니다.”

“문득 살아온 나날을 되돌아보니, 해 놓은 게 아무 것도 없다는 탄식이 나오더군요. ‘과학사상’에 ‘과학과 종교’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마무리해야겠지요. 새로 떠맡은 함석헌 선생님의 삶을 정리하는 작업이 평생의 할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나이로 75세지만, 한 2~3년은 앞으로도 끄덕 없을 거 같아요(웃음). 새로운 일을 맡은 셈인데, 함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싸우는 기분’으로 해볼 계획입니다.”

김용준 교수의 기억과 시선으로 그려질 함석헌 선생의 40년 삶은 단순한 현대사의 복원이 아니다. 삶과 사상을 하나로 잇기 위해 위태로운 시절을 모질게 달려온 사람들의 동시대의 정신적 초상화이며, 다음 세대가 또 다음 세대로 이어나갈 깊고 단단한 사유의 가교이며, 무엇보다 과학자 김용준의 과학, 철학, 신학 탐색에 바친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최익현 기자ihchoi@kyosu.net
2002-11-01 13: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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