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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ll
  아우슈비츠의 학살은 조작의 가능성이 있다
  


레옹 디그렐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쓴 편지중.



1979년 5월 20일 망명지 스페인에서



성하(교황)께 삼가 드립니다.
저는 레옹 디그렐이란 사람이며, 2차 세계대전 전에는 벨기에에서 렉스 운동의 지도자였습니다. 세계대전 중에는 의용군 사령관으로서 독일의 28사단과 함께 동부전선에서 전투한 사람입니다.
이 글을 쓰는 것은 누가 종용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며, 저는 성하와 마찬가지로 카톨릭 신자고,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하나의 형제로서 이러한 글을 올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중략---------------



제가 염려하는 것은, 단순히 성하가 그곳에 가셨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서 성하가 기도를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부여될 것이며, 사악한 선전광들의 연막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성하의 등뒤에서 증오의 악선전을 더욱 가열차게 해댈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과거 25년간 아우슈비츠 문제에 대해 악독한 마음으로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예! 거짓말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감금되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아우슈비츠에서 대량으로 학살했다는 전설적인 그 이야기, 헛소리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1945년부터 이 전설적인 내용은 수천 수만가지의 책에 기술되었고, 이로인하여 전세계가 이것을 믿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들은 말세를 연상시키는 총천연색 영화를 만들어 사실을 조작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산술이나 상식에 맞지도 않는 말을 믿게하고 있는것입니다.



친애하는 성하.
저는 성하께서 2차 세계대전 중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저항 운동에 참여하여 전투도 하셨고, 심지어는 아우슈비츠에 잡혀있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곳을 거쳐간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하께서도 그 독가스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교황이 되지 않으셨습니까?



성하께서는 바로 그 안에 갇혀있었던 증인으로서, 그들이 독가스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성하께서는 속세의 선전광들이 이 거대한 학살사건을 조작해 냈다는 것을 알면서도 쳐다만 보고 계시는 가장 중요한 증인이 아닙니까?



---------------중략---------------



제 3제국(히틀러정권) 시절에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25퍼센트 정치범이나 저항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고, 75퍼센트는 양심범과 일반 잡범, 또는 변태성욕자들이었습니다.



---------------중략---------------



그러나 한 도시에서 무고한 독일 시민 30만 명이 개죽음을 당했지만, 그러한 사진은 조심스러운 배려 덕분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러한 사진들도 함께 공개가 되었다면 나치에 대한 증오의 열기는 전부 연합국쪽으로 넘어가 연합국은 곤욕을 치뤘을겁니다.



---------------중략---------------



성하 그런 다음 아우슈비츠의 독가스실에서 가공할 지클론 B 가스를 사용하여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함으로써 계획적으로 인종을 말살시키려고했다는 전대미문의 이야기가 생겨났습니다. 종전후 수십년동안 세계인류의 뇌리를 때리고 있기에 과학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아무도 이에 동조하려는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학살을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수사 보고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400평방미터 되는 아우슈비츠의 독가스실에서 한번에 3천명씩 넣어 하루에 2만 4천명을 죽였으며 벨제크(belzec)에서는 넓이 25평방미터(7.6평), 천장이 1.9미터 되는 방에 한번에 7백~8백명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25평방미터라고 하는 넓이는 조금 큰 침실크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성하께서는 그런 침실에 칠팔백명이나 되는 사람을 집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1평방미터에 30명을 넣었다는 이야기인데, 1평방미터는 공중전화 부스의 크기정도 밖에 되지않습니다. 성하. 성베드로 광장이나 바르샤바 신학교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나 개인 캐비넷속에 30명이란 사람을 쌓아넣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공중전화 부스나 금붕어 어항에 아스파라거스나 콩나물처럼 30명을 쌓아넣거나 성하의 침실에 8백명이란 인원을 수용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또 군병력 2개 연대에 해당하는 3천명을 아우슈비츠 독가스실에 집어넣거나 벨제크의 방에 7~800명의 인원을 집어넣었다고 합시다. 독가스가 사용되지 않았더라도 질식으로 전원 사망했을 것입니다. 그런 방에 마지막 한사람까지 집어넣고 문을 잠그려고 할때 쯤이면 이미 거의 다 죽어버린 시체가 되었을 것이며, 지클론 B 라는 가공할 독가스는 이미 죽어버린 송장위에나 뿌려졌을 겁니다.



---------------읽는 유저의 편의를 위한 중략---------------



이 가스는 아마도 문틈 또는 굴둑 따위의 구멍이나 마룻바닥을 통해 뜨거운 공기나 증기의 형태로 투입되었을 것입니다. 과학적 상식이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지클론 B 라는 가스는 발화성이 강하고 접착성이 강하여 취급이 상당히 힘든데다가 살포한후 실내공기를 모두 뽑아낸 다음에도 21시간쯤 지난 후에야 들어가야 안전합니다. 즉 살포후 21시간 후에나 시체처리 잡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만일 그들(연합군)의 주장대로 아우슈비츠에서 하루에 2만 4천명을 죽였고 시체들의 입을 벌려 금이빨이나 입속에 감춘 다이아몬드를 뽑아냈다면, 윗턱 아랫턱을 합하여 모두 4만 8천 짝의 턱뼈의 이빨들을 검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중략---------------



전해듣기로는, 사람이 죽으면 뻣뻣해져서 입을 벌리는 것조차 그리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공식 발표에 따르면, 불도없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방에서, 거의 원시적인 연장만을 가지고 8명이 작업을 했다 합니다. 아마도 세계 어느 기술자보다도 빠른속도로 위아래 치아를 검사하고 작업했겠지요. 한번 연필을 들고 계산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화장로 속에 넣기전에 그 많은 시체들의 항문과 여자들의 질 속에 다이아몬드나 보석 따위가 있는지 모두 조사했다는 것이 아우슈비츠 역사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공식화된 역사이야기입니다.



6백만명을 독가스로 살해했으면 인분이 흘러나오고 피가 범벅이 된 상태였을 텐데, 성해께서는 그런 속에서 6백만개의 항문과 4백,5백만개의 질과 자궁들을 샅샅이 더듬을 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숨겨놓은 귀금속을 찾겠다고 냄새나고 지저분한 구멍 속 끝까지 손을 집어넣어 하루에 2만 4천개의 항문과 1만 5천~2만개의 질을 후벼냈다는 이야깁니다. 이런 이야기는 정신병원 환자들이나 할 이야기가 아닌지요?



---------------읽는 유저의 편의를 위한 중략---------------



독가스 학살이며 시체로 상품을 제조했다는 주장이며 시체 속에 손을 넣어서 귀금속을 찾았다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학살당한 유태인 숫자도 조작입니다. 리쿠에 신부는 1천 5백만명, 라루스 사전에는 2천만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당시 세계 유태인 인구를 합한것보다 초과되는 숫자입니다. 이렇게 조작해 낸 아우슈비츠 역사이야기를 기정사실화하여 믿도록 강요당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일이 계속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중략---------------



1944~1945년에 드골은 적에게 부역하거나 협조했다고 수만명의 시민들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처칠이 독일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명령하여 죄없는 독일 시민들을 수없이 죽게 만들고, 양민들을 지하실에 넣어 유황으로 불태워 죽인일, 하룻밤에 20만명 가량의 부녀자, 어린이들 불태어 온 도시를 화장터화한 드레스덴에 대한 폭격명령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선 20만명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사람들이 타고 남은 재의 무게를 추정하여 계산한 숫자에 불과합니다.



---------------중략---------------



그 거짓과 과장된 날조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부르짖지만 소련과 미국은 자기들의 목적을 위하여 위협과 고문으로 그 불씨를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흉악한 뉘른베르크의 시대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중략---------------



성하께서 역사적으로 아직 시비가 가려지지 않은 일의 한쪽에 가담하고 증오로 가득 찬 미치광이들이 당신의 숭고함을 서슴없이 이용하도록 하는 성심(聖心)의 잘못을 저지른다고 해도 저는 망명하고 있는 멀리에서, 당신이 아우슈비츠에서 미사를 드리는 날, 당신을 위하여 또 기도할 것입니다.



성하께 충복을 빌면서 레옹 디그렐 올림





레옹 디그렐은 1906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철학자, 작가, 기자, 정치인, 군인의 여러직업을 가질정도로 다제다능했던 조국 벨기에와 유럽 기독교의 악마화를 막기 위하여 싸웠으며 알려지지 않은 20세기의 비사를 많이 쓴 사람이다.
약관 29세의 나이로 카톨릭교 렉스운동에 감당하여 국가는 단합되고 사리에 맞는 사회주의 정책을 펴는 정부가 필요하다는 극단적인 정견을 갖고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처음으로 제도 정치에 참여한 선거에서 디그렐은 29세의 약관으로 벨기에 사상 최고의 득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그의 당은 21개의 의석을 획득하여 11.5퍼센트의 국회 의석을 차지하였다.
그는 유럽이 공동으로 단합하여 공산세력에 대항해야하는 주장을 펴서 히틀러의 공감을 얻었고,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발룬(Walloons)'이라는 의용부대를 창설했다.




이 부대는 후에 '발로니아 SS 28사단' 이라는 독일 정예사단으로 바뀌며 디그렐은 그 부대의 사령관으로 유임된다. 그는 나중에 철십자 기사 훈장을 받은 유일한 비독일계 사람이다.
그는 전쟁 능력도 탁월하여 미 육군의 존 반슨 준장은 미 육군성의 잡지에 쓴 글에서 디그렐의 '전술학'을 "전쟁의 예술로서 군인은 누구나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는 노르웨이 근처에서 벌어진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사단병력 2천 5백을 모두 잃고 그와 함께 3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는 경비행기로 탈출하여 스페인으로 넘어가 정치망명허가를 받은 뒤에 1993년 8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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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1979년 6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교황이 찾아가 폴란드의 전체 주교들과 함께 직접 미사를 드린다는 소식을 듣고 교황의 처사를 탄원하는 글입니다.
제가 줄인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 내용에서는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학살 수는 10배로 뻥튀기 되었고, 상품으로 만들어 팔았다는 것도 거짓이라고 합니다.



덧붙이자면, 이 편지는 하나의 이설로 볼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현재 벨기에에선 이 편지가 법에
저촉 된다고하여 내용공개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숨어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그들에겐 두가지 역사가 존재한다. 동양사, 서양사가아니라,
알려진 역사, 알려지지 않은 역사.'


2013-07-31 13: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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