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커 서울모임 자유게시판입니다.
자유게시판은 무삭제원칙으로 운영됩니다.
단, 상업적인 글과 인격을 모독하는 글은 글쓴이의 동의없이 삭제합니다.



  김정연 [ E-mail ]
  황금풍뎅이
  

여러분은 이 세상이 신비롭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세상은, 사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왜 가끔 이런 얘길 듣죠.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족이 죽게 되었는데 꿈속에 그 사실이 나타나더라는 얘기. 사랑하는 사람이 다쳤는데 그 순간 자기도 아픔을 느꼈다는 얘기. 그러나 이보다 더 신비로운 것은 사람이 회심하는 사건입니다.

회심이라 하니까 꼭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 같지만, 아무 짓도 안한 사람이 무언가 하려고 결심하는 것도 회심이요 가던 길을 돌이켜 되돌아 오는 것도 회심입니다. 이러한 회심의 순간에는 사람은 무언가 내 밖에서 내게 결심을 촉구하는 어떤 표징이 주어지길 기대하고 바랍니다. 그만큼 혼자 하기가 어려운 것이 회심이라고나 할까.

1930년쯤 되었을까, 유럽에 한 백작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부인은 아름다운 얼굴에 적당히 풍만한 몸매, 그리고 유창한 화술과 부유함으로 사교계를 주름잡던 여인이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의 삶이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엉터리처럼 느껴진 거예요. 우울증이란 한번 빠져들면 끝이 없는 법, 게다가 더 나빴던 것은, 이 부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기 힘으로 무언가 한 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사교계의 꽃이 되는 일 빼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던 거죠.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판국이니 부인이 하는 일은 빤했습니다. 부모님을 탓하고 남편을 탓하고, 하인들을 책망하고 이웃을 비난하는 것이 그녀의 일과가 되어 버렸죠. 그러니 누가 이 부인을 좋아할까.

견디다 못한 남편이 그녀를 유명한 정신분석의인 칼 융 박사에게로 데려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융 박사는 참을성 있게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었습니다. 박사는 특유의 명민함으로 그녀가 단순한 삶을 넘어서는 어떤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세계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세속에 너무 깊이 물들어 있던 부인은 그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답니다.

상담은 언제나 그 언저리에서 끝이 났습니다. 무언가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져 주지 않는 이상은, 이 상담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은 꿈을 하나 꾸었지요. 융 박사는 꿈이란 것이 때때로 신비스러운 것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는 영혼의 존재를 믿거든요. 그러나 엄밀한 자연과학의 신봉자인 백작부인은 융 박사의 그러한 견해를 터무니없는 미신이라 생각하고 비웃곤 했습니다. 그래서 꿈 이야기를 할 때면 조심해야 했어요.

백작부인은 말했습니다.

"박사님, 제가 아무래도 어떤 돌파구를 갈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가 봐요. 저는 어젯밤 제가 황금풍뎅이가 된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유리창 사이에 갇혀 있는데, 문이 제발 열렸으면 하고 너무나 간절히 바라다가 깨어났습니다. 그 문이 열리기만 했더라면 저는 박사님이 바라시는 대로 치료가 되었을 텐데요. 그 꿈은 아마도 아직 제가 자아의 견고한 껍질을 버리지 못했다는 뜻이겠죠? 그래도 그 풍뎅이는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단단하고 찬란한 날개 하며 이미 완성된 뿔 하며, 제 자아가 그런 모습이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지만 꿈에 불과해요."

그녀가 꿈 이야기에 열중해 있는 동안 박사는 자기 등뒤에서 붕붕거리는 소릴 들었습니다. 돌아보니 황금빛이나는 커다란 벌레 하나가, 세상에, 풍뎅이였어요, 창문틈으로 들어오려고 붕붕대고 있는 것이었죠.

박사는 일어나 창으로 다가가서는, 그 날벌레를 들어오게 했습니다.

"부인이 꿈에 본 것이 이 벌레입니까? 자, 여기 그것이 있군요."

백작부인은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럴 수가, 그러나 실제로 그녀가 꿈에 보았던 그 황금풍뎅이가 지금 눈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융 박사는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동시성의 원리라 이름붙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학문적인 얘기이고,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사람은 누구나 다 마음 속에 황금풍뎅이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꼭 누가 건네 주지 않더라도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일,

나의 간절한 바람이 다른 사람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질 때,
내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볼 때,

저는 신비로운 동시성의 원리를 믿습니다.
2002-12-20 16:11:52

이름
내용
비밀번호


     
  

관리자로그인~~ 전체 894개 - 현재 56/60 쪽
69
  속내
2003-01-07
2515
68
곽봉수
2003-01-07
2617
67
2003-01-03
3220
2002-12-20
3170
65
2002-12-18
2794
64
2002-11-19
2836
63
2011-01-23
1686
62
씨알사상연구
2002-11-18
2454
61
2002-11-18
2657
60
곽봉수
2002-11-07
2505
59
2002-11-06
2524
58
2002-11-05
3020
57
2002-11-04
2661
56
2002-11-03
2563
55
느티
2002-11-03
2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