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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관하여

-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최승자 옮김/까치)에서 -

1.
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것은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다.
침묵은 그야말로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위대하다.
침묵은 존재한다. 그 단순한 현존 속에 침묵의 위대함이 있다.
침묵은 모든 것이 아직도 정지해 있는 존재였던
저 태고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듯하다.
말하자면, 침묵은 창조되지 않은 채 영속하는 존재이다.

2.
침묵이 존재할 때에는 그 때까지 침묵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듯이 보인다.

3.
침묵은 언제나 완전하게 현존하며 자신이 나타나는 공간을 언제나 완전하게 가득 채운다.

4.
침묵은 우리에게 가까이, 우리 자신의 몸처럼 느낄 정도로 가까이 있다.
침묵은 잡을 수는 없지만, 옷감 마냥, 직물 마냥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5.
멂과 가까움, 멀리 있음과 지금 여기 있음, 그리고 특수와 보편이, 그처럼 한 통일체 속에 나란히 존재하는 것은 침묵 말고는 다른 어떤 현상에도 없다.

6.
침묵은 효용의 세계 밖에 존재한다. 침묵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침묵으로부터는 진정한 의미에서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다.
침묵은 비생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용한 모든 것들보다는 침묵에서 더 많은 도움과 치유력이 나온다.

7.
무목적적인 침묵은 지나치게 목적지향적인 것의 겉에 있다. 그 무목적적인 것이 지나치게 목적지향적인 것 곁에 갑자기 나타나서, 그 무목적성으로써 놀라게 만들고 목적지향적인 것의 흐름을 중단시킨다.
침묵은 사물들을 분열된 효용의 세계로부터 온전한 현존의 세계로 되돌려 보냄으로써 사물들을 온전한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사물들에게 성스러운 무효용성(無效用性)을 준다. 왜냐하면 침묵 자체가 무효용성, 성스러운 무효용성이기 때문이다.

8.
침묵 속에서 인간은 다시금 시원적(始原的)인 것 앞에 서게 된다. 모든 것이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될 수 있고, 모든 것이 다시 새로 창조될 수 있다. 어느 순간에나 인간은 침묵을 통해서 시원적인 것의 곁에 있을 수 있다. 침묵과 연합하면 인간은 침묵의 원초성(原初性)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원초성에 참여하게 된다.

9.
말은 침묵으로부터 그리고 침묵의 충만함으로부터 나온다. 그 충만함은 말 속으로 흘러나오지 못할 때에는 그 자체로 인하여 터져버리고 말 것이다. .... 침묵으로부터 발생하는 말은 그것에 선행한 침묵을 통해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10.
어느 말 속에든, 그 말이 어디서 왔는가를 보여주는 한 표시로서 어떤 침묵이 들어 있고, 또한 어떤 침묵 속에든 침묵으로부터 이야기가 생긴다는 표시로서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다. 따라서 말은 본질적으로 침묵과 연관되어 있다.

11.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에는 언제나 제삼자가 있다. 즉 침묵이 귀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말들이 먼 곳으로부터, 침묵이 귀기울이고 있는 그곳으로부터 온다는 것이 그 대화를 폭넓게 만들어주며,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말은 더 한층 깊고 충만하게 된다. .... 따라서 그러한 대화에서 제 삼의 화자는 침묵이다. 플라톤의 {대화}의 끝 부분에서는 언제나 침묵 자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 속에서 그때까지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침묵의 이야기를 경청한 자가 되는 것이다. .... 인간은 말을 통해서 침묵의 소리를 듣게 된다. 진정한 말은 침묵의 반향(反響)인 것이다.

12.
"온 지상에 퍼져 있는 그토록 아름답고 힘이 있고 다양한 언어들을 생각해 보면, 언어들 속에는 거의 초인간적인 어떤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결코 인간으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때때로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망가졌고 그리고 그 완전성을 침해받았던 어떤 것이.(야콥 그림)"

13.
음악의 소리는 말의 소리처럼 침묵에 대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평행한다.
음악의 소리는 침묵 위를 흘러가듯이 침묵에 떠밀려 표면 위로 나온 것이다.
음악은 꿈꾸면서 소리하기 시작하는 침묵이다.
음악의 마지막 소리가 사라졌을 때보다 침묵이 더 잘 들릴 때는 없을 것이다.

14.
말이 침묵에서 태어난 뒤에도 말에는 침묵이 깃들어 있다.

(2002년 4월 14일 예배모임 후 박성준님과 함께 공부했던 자료입니다.)
2002-04-17 15: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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