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둠 속에서 진리를 사모하여 - 시대 상황과 성장

17세기 영국 사회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공화정에서 다시 왕정으로, 이렇게 사회 운영의 틀이라 할 수 있는 정치 체제를 넘나들기도 했던 그야말로 격랑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종교 문제와 더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영국도 대륙의 종교 개혁의 깊은 영향 아래서 혼란의 시대를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치·종교의 혼미 속에서 사회의 안정과 개인의 자유를 장려하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물려받은 진리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신중한 탐색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영국에는 그러한 탐색에 나섰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중세를 지나온 카톨릭이나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교에도 영혼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던 사람들로서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흔히 Seeker((참을) 찾는 자 / 구도자)라 불리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자신의 의지보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새로운 계시를 기대했습니다. 조지 폭스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독특한 종교 체험과 뛰어난 지도력을 갖추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바로, 이미 일부 Seeker들로 이루어져 있던 '친우회(Friends)'에 힘을 더해 주고 하나의 신앙운동으로 정착시켜 이끌었던 사람입니다. 오늘날 퀘이커(Quakers)라 불리는 친우회(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는 바로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조지 폭스는 영국 중부의 레스터셔, 지금의 페니 드레이튼이라는 곳에서 정직하고 올곧은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Christopher Fox는 직공으로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공정한 크리스터'라 불리었으며, 어머니 Mary Lago는 비슷한 지위의 부인들보다 뛰어난 교양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조지 폭스의 어린 시절에 관하여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공식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서부터 나이에 비해 신앙심이 깊고, 생각하기를 좋아했으며, 침착하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사려가 깊어서 그가 어떤 사실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것을 들으면 모두들 깜짝 놀랐으며, 영(spirit)의 일들에 관해서 특히 그러했다고 윌리엄 팬은 전합니다. 그의 십대 시절, 폭스는 목사(priest)가 될 것을 바라는 친척들의 희망을 뒤로한 채 어느 구두제조업자 밑에서 일하면서 양털 장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폭스가 일단 한번 "정말입니다"하면 어쩔 수가 없다'고 평할 정도로 정직하고 성실했습니다. 물건을 속여 팔던 시대에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성실과 정직을 비웃었습니다만, 결국은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사업도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집을 떠난 후에는 파산지경을 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윌리암 팬(William Penn, 1644.10.14 - 1718.7.30)에 의하면, 폭스는 양치는 일을 아주 좋아해서 양치는 솜씨가 훌륭했는데, 양치는 일은 깨끗하고 고독했던 폭스의 성격과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일로서, 후에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역하고 봉사하는 일의 상징이 되었다고 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