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예배와 예배 모임(Worship and the Meeting for Worship)

예배 모임은 친우회의 핵심(heart)입니다. 예배는 밝혀주고 능력을 주는 하나님의 현존 속에 우리를 함께 모아들이고, 새로워진 전망과 열심을 가지고서 나아가도록 합니다.

예배
"예배"에 해당하는 worship이라는 단어는 "가치로운 배"(worth-ship)라는 개념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느끼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궁극적인 가치로운 배(ultimate worthship)라는 그러한 느낌에 대한 우리의 표현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띌 수 있습니다. 예배는 혼자서 혹은 일행으로, 고요(silence) 속에서, 음악이나 혹은 말로, 침묵(stillness) 속에서나 혹은 춤으로, 언제나 가능합니다. 예배는 장소나 시간이나 형태에 결코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친우들이 예배할 때에, 우리는 우리 존재의 깊은 곳으로부터 나와서 생명과 우리 주변의 우주 만물을 주신 분인 하나님께로 뻗어 이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과의 친교(communion)를 추구함이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우리들 자신 - 몸과 영혼 - 을 헌납하는 것(offering)입니다. 예배의 느낌(The sense of worship)은 예배 모임의 침묵 가운데서 우리가 느끼는 경외감(awe) 속에서, 혹은 자연과 자연의 힘에 우리가 깊이 연계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속에서 경험될 수 있습니다. 예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존재의 궁극적 근원(ultimate source)으로 인정하는 표시로서 회개와 용서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때의 평온함(serenity)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배에서 우리는 우리들 생활의 방향과 우리 자원들의 사용의 방향을 발견합니다. 인도하심(leadings)은 흔히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참조함으로써, 또한 내적인 빛(the Inner Light)의 변화시키는 능력에 의해서 보다 더 분명해집니다. 예배로부터 위대한 두 계명에 대한 선명한 이해가 나옵니다 : "네 마음을 다하며 영혼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루가 10:27).
내면의 스승에게 주의 깊게 귀기울임으로써 신선한 열림들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사랑, 통찰력, 그리고 상호의존의 유입 등이 그것입니다. 또한 참된 귀기울임은 예배하는 자로 하여금 고통과 근심의 근원이 될 것이 분명한 그런 인도하심을 포함하여, 새롭지만 때로는 성가신 것이 될 그런 인식들에도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마음의 온전함(wholeness of heart)을 가져옴으로써 힘겨운 과업들이 기쁨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고통이나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마음이 상한 채 예배할 때조차도, 우리는 바로 이 예배 속에서 매일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것들을 견뎌낼 수 있는 새로운 힘을 발견합니다.
예배의 경험은 매번 다릅니다. 예배가 영(the Spirit) 안에서의 기다림으로부터 무르익어 가는 동안, 영적인 교제를 준비하는 데 있어 정확한 방식(right way)이란 없으며, 따라야할 규정된 관습도 없습니다. 생기에 넘치는 예배는 어떤 특정한 관습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깊이 느껴진 갈망에 훨씬 더 의존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 7: 7).

예배 모임
친우들은 매일의 기도, 명상, 그리고 특히 성서에 대한 공부와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대한 공부로써 예배를 준비한, 그런 마음과 지성으로 모임에 오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준비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경이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농익게 하며, 그런 인식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을 얻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또한 일상적인 생활과 업무 속에서 사려 깊은 숙고와 내면의 빛에 귀기울임으로써 여러 가지 도움을 발견합니다.
친우들이 모임을 위하여 도착할 때, 그러한 준비들은 우리가 열중하고 있는 일과 사무들을 잠시 접어두도록 도움으로써 1660년에 알렉산더 파커(Alexander Parker)가 말한 방식으로 예배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
모임 장소에 맨 먼저 도착한 사람은 … 마음이 빛을 향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혼자 하나님을 기다리십시오, 마치 주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이점에서 그대는 강합니다. 그 다음에 도착한 사람은,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안으로 동일한 그 빛을 향하십시오. 그리고 영(the spirit) 안에서 기다리십시오; 나머지 사람이 다 들어오면,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인간의 모든 성정(性情)이 순전하게 가라앉고 고요해진 가운데 앉아서, 빛 안에서 기다리십시오. 영(the Spirit) 안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순전한 침묵에 이끌려진 사람은 말(words)로 주님에게 가까이 가는 것보다 더 가까이 주님에게 다가갑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요 영으로 예배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임에서의 예배는 마음과 몸을 가라앉히고, 긴장과 매일의 근심들을 내려놓고, 함께 모여 있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느끼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영(the Spirit)에게 개방함으로써 시작합니다. 예배에는 명상, 기억나는 성서구절이나 다른 신앙 문헌에 관한 묵상, 고요한 기도, 하나님에 대한 감사, 찬양, 사람의 행위들에 대한 숙고, 양심의 가책, 용서를 구함, 혹은 방향 탐색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공허할 때조차도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친우들은 경험해 왔습니다.
함께 예배함으로써 예배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강하게 하고, 예배 행위 자체를 농익게 합니다. 그러한 공동의 예배는, 개별적이지만 상호의존적인 그 구성원들이 서로 서로에게 또한 보다 거대한 전체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앞에 놓인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콘서트에서 자신들 각각의 재능들을 바칠 때에 생기는 빛나는 통일체요 개인의 성취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친우들은 때때로 바울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그리스도가 그 머리가 되는 몸으로서의 예배 모임을 이야기합니다(고전 12:27). 각 구성원들의 능력과 참여는 예배 모임의 영적 생명을 유지하고 풍성하게 하는데 중요합니다.
영의 소생은 우리가 세상사로부터 돌아서서 내면의 평온함(inward serenity)을 발견할 때에 생깁니다. 친우들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 18:20)라는 예수의 약속의 확실성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강화된 하나님의 현존의 느낌에 대한 우리의 희망들을 감화는 물론 고요 가운데 전달된 그룹 예배의 누적적인 힘을 통하여 실감합니다. 하나님과 하나(oneness)요 또 서로 서로도 하나라는 상당히 깊고도 분명한 느낌을 경험할 때에 우리는 "한데 모아진" 혹은 "품에 안긴" 예배 모임이라 말합니다.

교제와 전달(communion and communication)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는 예배 모임의 본질적인 생명을 이룹니다. 예배 모임의 살아 있는 침묵 속으로 함께 나누려는 것이 아닌, 순전히 개인적인 인도하심과 신선한 통찰력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 그것들은 주로 듣기 위한 모임을 위해 의도된 것들입니다.
인도하심이 함께 나누어져야할 때가 되면 예배자는 감화(vocal ministry)에 대한 저항하기 어려운 내면의 요구를 느낍니다. "퀘이커"라는 바로 그 이름은 영(the Spirit)의 권능 하에 증언하던 초기 친우들의 분명한 떨림에서 유래한 전승에 의한 것입니다. 감화가 비록 그러한 외양을 동반하지 않을지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여전히 내면의 떨림을 느낍니다. 감화는 기도, 하나님 찬양, 노래, 가르침, 증거, 혹은 나눔과 같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단일한, 생명의 주제(a single, vital theme)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흔히 외관상으로 무관해 보이는 인도하심들도 나중에서야 그 저변에 어떤 통일성(unity)이 있음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감화와 기도는 인지되지 않았거나 발설되지 않은, 다른 구도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한 응답이 되기도 합니다.
말하라는 영의 (the Spirit) 부르심을 누군가가 받아들여 감화를 하게 되면, 동료 예배자들은 개방된 마음과 지성으로 거기에 귀기울이도록 마찬가지로 부름을 받습니다. 자신 없어 하고 여린 영들이 그들 안에 어렵사리 생성되려고 하는 메시지를, 비록 앞뒤가 맞지 않더라도, 그것을 말할 수 있으려면 모임 공동체의 애정 어린 격려를 느껴야 합니다. 생각을 오래 발전시켜왔고 또한 배움과 경험이 심오한 친우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면의 스승의 격려를 끈기 있게 기다릴 때에 가장 훌륭하게 모임에 이바지합니다. 감화에 이어 또 다른 감화를 하고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은 먼저 감화된 내용에 내면적으로 열중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시간적 여지를 주어야 합니다.
친우들은 말을 하거나 혹은 하지 않기로 미리 결정함으로써, 또는 고요와 전해진 말씀 사이에 어떤 균형을 주기 위해 이야기해야할 의무감을 느낌으로써 부름의 길에 방해물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설사 한 마디도 나오지 않더라도 예배 모임은 매우 심오하게 자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것들(Hindrances to Worship)
영적인 기회들은 모이는 시간에 유의하고 또 이미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는 일 등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책임도 수반한다는 것을,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논쟁이나 강의 혹은 토론하는 태도로 하는 말은 예배 모임과 모임 공동체의 생명을 파괴하게 됩니다. 앞서 감화한 것에 대해 대답을 한다거나 반박하는 것도 좀처럼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강렬하게 뒷받침되는 주장들을 말하고자 마음이 움직인 친우들은 자신들이 통찰한 것들을 간단하고도 섬세하게 말하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 동안에 알리거나 공유할 자료를 가져온 사람도 마찬가지로 섬세해야합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책을 읽는다거나 혹은 무심하게 그냥 앉아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동료 예배자들로부터 그리고 스며 배이듯 도달하는 영(the Spirit)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예배 모임 중에 예배를 방해하는 일들이 발생하면, 예배와 봉사(Worship and Ministry) 위원이나 혹은 다른 적절한 사람들이 재빨리 그러나 사랑으로 권고해야 합니다.

마무리(In Closing)
친우들은 조용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예배하기 위해서 모입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돌봄으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자하는 우리의 공통된 열망으로부터, 영(the Spirit)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고, 우리의 결점과 용서의 실재를 뚜렷이 느끼며, 우리의 고뇌, 신앙, 찬양, 환희,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함께 나옵니다. 예배 모임이 끝나면 우리는 하나님과 서로에 대한 우리의 열의에 감사하는 표시로서 서로 간에 악수를 나누고, 하나님의 은총과 또한 사랑의 권능과 실재에 대한 새로워진 확신을 가지고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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